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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n D3x Photo/Night View

경주 월정교의 달

경주에서 안압지 야경을 촬영하고 근처에 있는 월정교를 촬영하셔도 좋습니다

슈퍼문이 뜨는 날이면 더욱 더 금상첨화구요 ^_^

안압지는 워낙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월정교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군요 ^^ㅋ

냇가 돌다리에서 여유롭게 삼각대를 펴고 담을수 있었습니다.

주변엔 거의 음식점이라서 촬영후 출출한 배를 채우고 컴백홈해도 되는 아주 좋은 코스이기도합니다 ^^ㅋ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921-1, 교동 274일원

애드센스 11번째 컨텐츠 불충분으로 거부 당하는중 -_-ㅋ

100번 채울때까지 해보자꾸나 -_-ㅋ

네이버 지식백과 해설문

 

‘원효대사는 월정교를 건너 요석궁에 들어갔다’고 전하는 경주의 월정교지는 통일신라시대 월정교 옛터이다. 이때에 원효대사는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주리요?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만들겠노라( )’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무열왕은 그 노래의 의미를 파악하고는 요석공주에게 원효대사를 보내도록 한다. 원효대사가 경주 남산으로부터 내려와 월정교(혹은 문천교)를 지나다가 자신을 찾고 있는 신하를 보고는 다리에서 떨어져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빠지니, 신하는 월정교 바로 옆의 요석궁으로 원효대사를 인도하여 옷을 말리게 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머물게 되었다. 이때 얻은 아들이 바로 설총()이고, 이후 원효대사는 스스로를 소성거사()라 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760년 경덕왕( 19) 때에 “궁궐 남쪽 문천() 위에 일정교(), 월정교() 두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춘양교()라고도 불리었던 일정교는 월정교의 동쪽으로 약 700m 상류에 위치해 있었다. 월정교()는 조선시대에 와서 월정교(, ->)로 표기되었다. 발굴조사에 의하면, 길이 60.57m의 월정교 아래 교각 사이에서 불탄 목재와 기와편이 출토되어, 교각윗면이 누각과 지붕으로 구성된 누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센 물살에 견디도록 교각을 배모양으로 쌓았다.
요석궁은 월정교터를 건너면 나오는 마을터에 있었다고 하며, 조선시대 경주 최부자집터로 바뀐 뒤에 현재는 음식점 등이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월정교 아래를 흐르는 문천()에서는 지금도 고둥 등을 줍는 아낙들이 있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만날 수 있다. 현재 월정교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 656년~660년경 원효대사 생애의 공간.